기사 메일전송

김어준, 정몽준에게 눈길을 돌리다

  • 이현중 메시지 크리에이터
  • 등록 2021-09-22 20:42:22
기사수정
  • 당돌함의 이준석이냐, 노회함의 김어준이냐 ⑭

진중권의 쓸쓸한 퇴장


2002년 대선정국의 후보 단일화 소동은 김어준과 김민석-김민웅 형제를 비롯, 내로라하는 인물들의 스텝을 꼬이게 만들고 말았다. 이미지는 MBC 뉴스 화면 갈무리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음경반전지음」은 진중권이 야설 작가로 전업할지도 모른다는 억측과 풍문을 글의 실제 내용과 상관없이 불러일으킬 정도로 누리꾼들 사회에서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진중권으로서는 딴지일보의 경영난으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김어준 총수를 도우려고 체면이고, 염치고 전부 때려치우고서 과감하게 팬티 바람으로 나선 격이었다.

 

한 발만 더 나갔다면 자칫 외설 시비에마저 휩쓸릴 수 있었을 진중권의 ‘X 까는 소리’ 칼럼은 어느 순간 딴지일보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필자는 진중권 전 교수에게 왜 연재를 중단했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허나 타인의 흑역사를 꼬치꼬치 들춰내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일은 별로 떳떳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짓이라고 여기는 까닭에 공개적 질문을 자제하고 있다. 나는 만약 진중권과 단둘이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음경반전지음이 돌연 힘없이 고개를 숙인 이유를 주변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게끔 소곤소곤 귀엣말로 반드시 탐문해볼 작정이다.

 

진중권까지 출동해도 회생에 실패한 딴지일보였다. 김어준은 부지런히 사방팔방 급전을 구하러 다녔지만 성과는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단적으로, 2002년 당시 금액으로 한 달 60만 원인 내 인건비가 통장에 입금될 기미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약속된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해주지 않는다고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손가락만 빨고 있는 건 왠지 구질구질한 느낌이 들어 내가 딴지일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뭔지를 이리저리 궁리했다. 우선은 원래 계획대로 시사 칼럼을 쓰기로 작정했다.

 

김어준 총수는 현재는 친문세력의 실질적 맹주이자 친노진영의 사실상의 수장으로 오연하게 군림하고 있다. 2002년의 김어준의 정치적 스탠스(Stance) 즉 좌표는 오늘날과는 천양지차였다. 그는 당연히 반(反) 한나라당 성향이었다. 김어준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공ㆍ사석을 불문하고 적극적이면서도 노골적으로 피력해온 터였다.

 

그런데 새천년민주당의 공식 대선주자인 노무현 후보와 노무현의 대체재로 강력하게 부상하는 중이던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사이에서 김어준 총수의 입장은 굉장히 어정쩡해 보였다.

 

김어준의 노선은 무원칙한 승리보다는 원칙 있는 패배가 낫다며 노무현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는 소신을 제16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 당일까지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던 필자의 태도와는 상당히 결을 달리하고 있었다. 굳이 면밀하게 분류한다면 김어준의 지향점은 노무현으로 지느니 정몽준으로 이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발언을 공공연히 일삼고 있던 김민석 전 의원이나 김민석의 친형인 김민웅 목사의 주장에 훨씬 더 근접하였다. 김민웅과 김민석 형제의 목소리는 나중에 저 악명 높은 후단협, 곧 후보단일화협의회의 전략적 목표 및 행동기조와 기본적으로 궤를 같이하게 된다.

 

김어준, 정몽준에 꽂히다

 

동일한 수준과 분량의 글도 글쓴이가 온라인 공간에 게재하면 인터넷 정치건달로 괄시당한다. 종이매체에 올리면 번듯한 지식인으로 대접받는다. 그러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나름 글깨나 쓴다는 네티즌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기성 출판사와 접촉해 책을 출간한다. 딴지일보에서 활동할 무렵의 필자는 아직 단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한 진선진미한 순수 인터넷 정치건달이었다.

 

그럼에도 필자는 다른 인터넷 정치건달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특장점을 한 가지 쟁여두고 있었다. 코스닥 시장 상장이 예정된 유망한 벤처기업에서 정상적 직장인으로서 생활해봤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사장님의 기쁨이 뭔지를 아는 몸이 되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인터넷 정치건달들은 여의도의 정치기획사를 제외한 평범한 일반 기업체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딴지일보는 정직원만 30명에 달하는 회사였다. 직원 숫자가 서른 명이면 절대 작은 규모의 기업이 아니다. 한데 직원들의 주력이 인터넷 정치건달 출신이었고, 따라서 딴지일보에 들어오기 전에 통상적인 사회생활을 체험하지 못했다. 대다수 임직원들은 김어준 총수를 어엿한 직장 상사가 아닌 만만한 동료 논객쯤으로 인식하는 풍토와 분위기였다.

 

과거의 딴지일보를 풍미한 민주주의적 기업문화의 8할은 김어준 총수에 대한 임직원들의 수평적 동지애, 한마디로 ‘야자타임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후의 김어준 총수가 부하 직원들의 이견과 반대를 철저히 금압하면서, “까라면 까고, 기라면 기는” 유형의 비굴하고 순종적인 고분고분한 아랫사람을 선호하는 지독한 권위주의적 기업인으로 변모한 근본적 원인은 그가 창사 초기의 딴지일보에서 받았던 어설프고 혼란스러운 직장민주주의의 참교육이 남긴 부정적 후유증에 있다.

 

나는 김어준 총수를 동료 논객이 아니라 항시 심기를 살펴야만 마땅할 기업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닌 김어준이 읽고픈 글을 딴지일보 기사로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김어준은 딴지일보 사무실에서는 로물루스이자 카이사르였고, 네로이자 시오노 나나미였다. 김어준이 보기에 나머지 구성원들은 죄다 언제라도 그를 배신할 가능성이 농후한 브루투스였을 뿐이다.

 

김어준은 정몽준의 대권 도전을 은근히 바랐다. 차마 자기 입으로 직접 말은 못해도 김어준 총수가 노풍이 잦아들며 이회창 대세론이 다시금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기존 대선구도에 정몽준이 제3후보로 출마해 지각변동을 일으켜주기를 원한다는 건 딴지일보 안에서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김어준은 정몽준을 향해 대놓고 추파를 던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몽준 쪽으로 서서히, 동시에 확실히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⑮회에서 계속됨…)


TAG
0
포토뉴스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이재용 '부당합병·회계부정' 무죄 확정…4년 10개월 재판 끝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 4년 10개월 만에 무죄를 확정받았다.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7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해 1·2심과 같은 무죄 판결을 내리고 검찰의 상고를 기...
  2. 온라인 플랫폼이 불러온 자영업 양극화…“성장잠재력 있는 곳에 금융 집중해야” 온라인 플랫폼의 확산이 자영업자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 속에, 정부의 자영업 금융지원이 성장잠재력이 큰 업체에 집중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정희완 한국은행 지역경제조사팀 과장은 17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5 BOK 지역경제 심포지엄’에서 “온라인 플랫폼 성장은 자영업 경영성과의 격차를 .
  3. 김민석 총리 "제2의 IMF급 경제위기, 범국가적 에너지 모아야" 김민석 국무총리가 16일 경주에서 열린 제48회 대한상의 하계포럼 개회식에서 현재 경제상황을 `제2의 IMF`에 비유하며 구조적·복합적 위기 극복을 위한 범국가적 에너지 결집을 강조했다.김민석 국무총리는 16일 오후 경주 라한셀렉트 호텔에서 개최된 제48회 대한상의 하계포럼 개회식에서 기조강연을 통해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강한 ...
  4. KB부동산, LH청약전용관 서비스 선보여 KB국민은행(은행장 이환주)은 부동산 종합 플랫폼 ‘KB부동산’에서 공공 청약 정보를 통합 제공하는 ‘LH청약전용관’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번 서비스는 지난해 12월 KB국민은행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간 업무협약(MOU)을 기반으로 민간 플랫폼 중에서는 최초로 LH분양주택의 청약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LH청약전용관’은 청약 ...
  5. 올해 2분기 부패·공익신고자 44명에 6억5천만 원 보상금 지급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유철환)는 올해 2분기 동안 부패 및 공익침해행위를 신고한 44명에게 총 6억 5천만 원 규모의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들의 신고를 통해 공공기관이 회복 결정한 수입은 약 65억 원에 달한다.분야별로는 ▴연구개발 1억 9천만 원(28.4%) ▴의료 1억 7천만 원(26.2%) ▴산업 1억 4천만 원(21.7%) 등 세 분야가 전체 보.
  6. 배우 박보검, 2025 한국 관광 명예홍보대사 위촉…‘출구 없는 매력’ 알린다 ‘출구 없는 매력의 한국 관광’을 알릴 새로운 얼굴로 배우 박보검이 나선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오는 7월 29일 ‘2025 한국 관광 명예홍보대사’로 박보검을 공식 위촉하고, 글로벌 홍보 캠페인 ‘네버 엔딩 코리아(Never Ending Korea)’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문체부는 24일, 한국 관광 홍보 유튜브 채널 ‘I...
  7. 美 25% 상호관세 D-7… 정부, 막판 총력전 속 '윈-윈' 해법 찾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25%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한 시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국 정부는 8월 1일 전 협상 타결을 목표로 막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한국과의 협상 상황을 "생산적"이라고 평가하며 계속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양국이 조만간 합의점에 근접할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