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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도 오고, 이회창도 오고, 정몽준도 오고

  • 이현중 메시지 크리에이터
  • 등록 2021-09-09 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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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돌함의 이준석이냐, 노회함의 김어준이냐 ⑨

김어준의 스카티 피펜 최내현

 

딴지일보의 대선본부장을 맡아 달라는 김어준 총수의 제안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이미지는 2002년 대선정국 당시의 KBS 뉴스 화면을 갈무리한 모습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발군의 인터뷰어였다. 전문 인터뷰어로 오랫동안 활약해오며 국내 유수의 유명 인사들과 함께 수십 권의 대담집을 출간한 지승호 작가는 사람들로부터 흥미롭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에서 김어준이 손석희 전 JTBC 사장과 쌍벽을 이룬다고 평가한 바 있다.

 

손석희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정식으로 훈련을 받고 체계적으로 경험을 쌓아온 아나운서 출신의 직업 언론인이다. 반면, 김어준은 딴지일보를 창간하기 이전에는 PC 통신 게시판에 꾸준히 글을 올린 게 그가 종사한 언론활동의 전부였다. 손석희의 명성이 후천적 노력의 산물이라면, 김어준의 평판은 천부적 재능의 선물이었다.

 

손석희에게는 MBC 문화방송이라는 거대하고 막강한 조직의 지속적 지원이 있었다. 김어준에게 그와 같은 대규모의 후방 병참기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그는 최내현이란 회심의 비밀병기를 수중에 보유하고 있었다.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단은 자기는 시합에 출전해 득점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왜냐면 수비, 리바운드, 어시스트, 상대방 코트로의 안전한 공 운반 등의 전반적인 경기의 운영과 조율은 조던의 조력자이자 왕조 시절의 시카고 불스의 2인자였던 스카티 피펜이 모두 도맡아 거의 전적으로 책임져줬기 때문이다.

 

김어준 총수가 인터뷰어로 출동해 진행한 일련의 회견들은 선정적이고 엽기적인 B급 인터넷 사이트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딴지일보에 무시 못할 권위와 공신력을, 만만찮은 무게감과 신뢰감을 부여해줬다. 딴지일보의 존재감과 방문자 숫자를 나날이 불려준 날카롭고 재기발랄한 인터뷰들에서 김어준은 편안하게 시쳇말로 입만 털면 되었다. 기록과 정리, 사실 검증과 제목 달기와 같은 세세한 편집 작업은 피펜에 버금갈 위대한 조력자 최내현이 전부 다 알아서 척척 처리해줬던 덕분이다.

 

김어준 총수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법인의 자금경색은 개인의 심근경색에 필적하는 치명적 위험상황이다. 문화일보의 인수 제의 거절과 곧이어 발생한 닷컴 거품 붕괴 사태는 딴지일보의 돈줄을 완전히 마르게 만들었다. 심각한 자금난을 타개시켜줄 마땅한 수익구조, 즉 Business Model을 찾아내지 못한 여건에서 늘어나는 조회수와 높아지는 사회적 인지도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김어준 총수는 회사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녀야만 했고, 딴지일보의 이른바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로 각광받아온 김어준-최내현 특공대의 직격 인터뷰도 그 유탄을 맞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사다망해진 김어준 총수가 딴지일보의 기사 제작 업무와 관련해 사실상의 유고상태에 빠진 탓이었다.

 

필자는 두 가지 조건 아래 딴지일보에 영입되었다.

 

첫째 조건은 2002년 당시 금액으로 한 달 원고료 60만 원을 다달이 수령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해 초봄까지 근무하던 고객관계관리(CRM) 하청대행기업에서 그 서너 배 월급을 받았었다.


그러나 휴대전화 011의 TTL 회원들을 발주처인 SK 텔레콤 측의 잔소리를 수시로 들어가며 관리해주는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을스런 일과, 총수가 직접 낙점한 당당한 공식 객원 필진의 한 명으로서 딴지일보에서 글을 집필하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갑다운 일은 아예 차원부터가 달랐다. 이를테면 내가 다닌 SK 제휴업체의 사장님 성함은 아무도 몰라도, 딴지그룹 총수 김어준의 이름 석 자는 웬만한 젊은 누리꾼들에게는 이제는 필수적인 기초상식에 속했다.

 

한층 더 매력적인 유혹의 속삭임은 두 번째로 제시된 조건이었다. 나를 딴지일보의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 대책본부」의 본부장으로 임명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거창하고 으리으리한 명칭을 지닌 조직의 출범식에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같은 여야를 망라하는 주요 대선주자들이 전원 초대될 예정이었다. 청년들, 특히 네티즌들의 관심과 지지가 갈급한 후보자들은 김어준 총수가 기획하고 주최한 해당 행사에 당연히 군말 없이 참석할 게 분명했다.

 

나는 노무현, 이회창, 권영길, 그즈음 대선출마 가능성을 바쁘게 저울질하던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등의 내로라라는 쟁쟁한 한국정치의 실력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무수한 사진기자들이 터뜨리는 사진기 플래시 세례를 받을 터였다. 그리고 총수가 어디에선가 싼값에 만들어올, 「딴지일보 대선본부」라는 검고 굵은 글씨가 한글과 한자로 적당히 뒤섞여 쓰여 있는 큼지막한 나무 현판을 말쑥한 정장 차림에 더해 손에다 하얀 면장갑까지 깔끔하게 착용한 다음 사옥 입구에 기성 정치인들이 으레 관례적으로 하듯이 얼굴 가득 환한 표정을 지으며 느긋하게 달기만 하면 될 참이었다.


겨우 네 해 전 가을, 일개 백수 주제에 양복 입고서 검찰청에 불려가는 굴욕적 봉변을 맛봤던 필자로서는 거액의 로또 당첨과 맞먹는 그야말로 엄청난 인생역전을 이루는 셈이었다. (⑩에세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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