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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부르르」 장사, 알고 보면 짠했다

  • 이현중 메시지 크리에이터
  • 등록 2021-09-02 15: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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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돌함의 이준석이냐, 노회함의 김어준이냐 ⑥

닷컴 버블 폭발의 추억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비꼬고 있다. 허나 진중권은 성인용품 판매에까지 불가피하게 나서야만 했던 김어준의 고통스런 속사정을 모를 인물은 아니다. (이미지는 진중권 페이스북)

닷컴 거품이 정확히 언제 꺼졌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분분하다. 왜냐면 사람마다 그 충격과 공포를 체감하는 강도와 시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확실한 사실은 닷컴으로 상징되는 인터넷 벤처기업을 통한 일확천금의 꿈이 깨지면서 도처에서 곡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혹자는 회사가 망했고, 혹자는 수중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었으며, 혹자는 극단적 선택을 불사하기도 했다. 그 무렵 한국경제의 새로운 희망이자 기대주로 각광받던 여러 벤처기업 경영자들 중 상당수는 현재까지도 폐인 상태로 지내고 있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 억지로 살고 있는 형국이다.

 

필자는 2000년 5월경 취업사기를 당하는 형식으로 닷컴 열풍의 몰락을 겪었다. 오다가다 우연히 알게 된 지인이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내로라하는 비즈니스 센터의 지점 사장이었고, 또 한 명은 벤처 창업을 목적으로 삼성그룹을 갓 퇴직한 전직 엘리트 대기업 사원이었다. 비즈니스 센터 사장님은 여동생이 재벌가 며느리로 시집간 일을 수시로 자랑하곤 했다.

 

그 두 사내가 의기투합해 그때 눈높이로는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었던 인터넷 화상채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세우기로 결정했다며 나에게 동참을 적극 권유했다. 나는 번듯한 벤처회사에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단박에 제안을 수락하고서 기존에 해온 몇 가지 일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 한 달 정도 시간 여유를 달라고 말했다.

 

그 한 달 사이 미국에서 닷컴 거품이 꺼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디지털 경제시대에 이역만리 미합중국에서 발생한 급변사태는 광활한 태평양 바다를 빛의 속도로 건너와 서울의 방배동을 사업장 소재지로 삼아 법인설립을 준비하던 두 중년 남자들을 직격했다.

 

한 달 가량 흐른 다음 나는 방배동 사무실을 다시 찾아갔는데 눈치코치 없는 필자가 느끼기에도 공기가 이상했다. 어색한 분위기가 잠시 이어진 후 내가 실장으로 부르던 삼성 SDS 출신의 K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기 이제는 안 오셔도 되는데….”

 

채용 계획이 백지화됐다는 뜻이었다. 필자는 K와는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음을 직감하고는 프로젝트 출범에 필요한 초기 사업자금의 조달을 책임지는 전주 역할을 맡고 있는 B 사장에게 나름 바쁜 사람 불러놓고 장난치는 거냐며 격앙된 어조로 항의했다. 나를 고용하겠다는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딱 잡아떼기는 B 사장 역시 K 실장과 마찬가지였다. B 사장이 결심하면 K 실장은 하는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였던 것이다.

 

두 사내를 붙잡고 통사정해봐야 더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임을 깨닫고 힘없이 등을 돌려 씁쓸하게 사무실을 나온 나는 문제의 비즈니스 센터가 입주해 있는 건물 밖으로 나서자마자 빌딩 쪽으로 몸을 거칠게 틀었다. 그리곤 인도 위를 지나가는 주변 행인들이 듣든 말든 전연 개의치 않고 큰소리로 외쳤다.

 

“X같은 새끼들!”


김어준을 만나다

 

취업사기는 물론 순전히 내 주관적 관점에서의 사건 규정이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B 시장과 K 팀장은 통상적인 비용 절감 차원의 일환으로 내 거취를 결정했을 게 분명하다. 더욱이 나와 그들 사이에 정식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아니었고…. 그럼에도 그 일만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분하다.

 

필자 같은 일개 구직자는 취업사기를 당하는 게 닷컴 거품 붕괴의 피해 수준이었다. 내가 입은 상처와 견주면 김어준 총수의 손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게 분명하다. 가히 메가톤급이었으리라. 수백억 원의 달콤하고 매력적인 현금질에도 내주지 않을 만큼 앞날이 창창해 보였던 딴지일보가 무일푼이나 다름없는 좀비기업으로 순식간에 전락한 터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김어준은 어쩌면 득도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범인(凡人)들은 단돈(?) 수백만 원이 눈앞에서 증발해버려도 자다가도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이불킥을 하리라. 김어준이 허공으로 날린 돈은 수백만 원이 아니라 물경 수백억 원이었다. 그것도 벌써 20년 전에!

 

실제로는 당장 미치고 팔짝 뛸 지경으로 속이 굉장히 쓰렸을 테지만, 문화일보의 딴지일보 인수 제안을 뿌리친 결정이 엄청나게 자멸적인 판단착오였음이 판명됐음에도 불구하고 김어준 총수는 특유의 여유와 너털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외려 딴지일보를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애당초 목표에는 추호의 변화와 흔들림이 없다며 의연함과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아직도 딴지일보의 경영난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형편에서 김어준이 펴낸 「건투를 빈다」는 제목의 책은 아마도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전하려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담긴 책이었는지 모른다. 필자는 김어준 총수가 직접 서명해 선물해준 「건투를 빈다」를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던 조카에게 건네주었다. 총수의 주술 반, 선동 반의 호소력이 한국사회의 젊은 남자들에게는 별로 먹혀들지 않는 탓인지 조카는 본인 또래의 여느 2030 세대 남성들처럼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을 극렬하게 사갈시하고 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얼굴과 더불어 성격도 변하기 마련이다. 필자가 요즘이야 ‘김흥국 정신’을 계승해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마구 들이대는 게 주특기가 되었으나, 김어준 총수를 처음 만났을 즈음에는 얼굴이 그리 두텁지 못했다. 낯가림이 심했던 것이다. 온라인 무대에서는 당돌하되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소심했던 필자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언젠가 한번 꼭 만나야겠다고 결심만 했을 뿐 이를 좀처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간절히 원하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다”는 주술기 넘치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 바 있다. 바로 그런 상황이 실제로 생겼다. 김어준 총수가 직접 했는지, 아니면 현재는 잘나가는 기업인으로 변신한 최내현 편집장이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으나 2002년 초여름, 딴지일보 측으로부터 사옥에 들르라는 연락이 왔던 것이다.


그해 봄, 노무현 돌풍이 거세게 불었을 때 필자도 노풍을 일으킨 주역의 한 사람으로 운 좋게 과분한 조명을 받았고, 소문이 총수에게까지 흘러들어갔던 모양이었다. 당시 필자의 활약상이 시사저널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노량진 산꼭대기에 위치한 필자의 집으로 찾아온 시사저널 기자들 가운데 하나가 지금은 대표적인 친문언론인으로 전향한 고재열 전 시사IN 기자였다. 필자는 저 유명한 고재열이 신입기자 시절 내 방에까지 왔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확인하고는 피식 쓴웃음을 내뱉었다.

 

드디어 필자가 김어준 총수와 상견례를 하는 날이 되었다. 딴지일보는 영등포구 문래동에 자리한 옛 일본군 창고를 사옥으로 쓰고 있었다. 명랑사회 구현을 견인하는 독립언론의 선두주자 딴지일보가 그 많고 많은 건축물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친일적폐 건물에 버젓이 입주해 있는 셈이었다. 이유는 자명했다. 임대료가 싸니까. 임대료가 저렴한 이유 또한 자명했다. 창문이 없으니까.

 

나는 총수와 처음 수인사를 나누며 했던 대화 내용이 이제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총수가 필자와 첫 대면을 하며 건넨 이야기는 김어준의 명성에는 어울리지 않을 썰렁하고 전형적인 아재 개그였다.

 

“(공희준 씨에 관해) 얘기 많이 안 들었습니다. 으하하하~”

 

남을 속이려면 제일 먼저 자기가 속아야 하듯이, 남을 웃기려면 스스로 앞장서 선도적으로 웃어야만 한다.

 

총수와의 인사를 마친 나는 사옥 안에서 열심히 근무 중인 딴지일보 편집국 가족들과 일일이 통성명을 했다. PC 통신 전성기부터 익히 들어온 유수의 논객들과 전설의 글쟁이들은 이곳에 죄다 모여 있는 기분이었다. 김어준 총수와 최내현 편집장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직원들은 필명으로 글을 써온 터라 그들의 실명을 파악하게 된 것 이때가 처음이었다.

 

필자는 딴지일보 편집국 구성원들이 어떤 업무에 주로 종사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 인사를 나누는 중간 중간 사무실 내에 켜져 있는 모니터들의 화면을 자연스럽게 둘러봤다. 무겁고 두꺼운 브라운관형 모니터를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데스크탑 컴퓨터가 아닌 노트북 컴퓨터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금 의아했다. 나는 화면에 응당 한글 워드프로세서나 나모 웹에디터, 또는 딴지일보의 편집기 프로그램이 떠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허나 대부분의 편집국 식구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뭔가를 부지런히 작업하는 중이었다. 필자는 그게 「부르르」의 홍보와 판매촉진을 위한 마케팅 기획안일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⑦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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